시대는 시간이 아니라 역사를 통해서 흐른다 - 11

2012. 11. 25. 07:44논설

 3) 선택과 강요

 

 우리 국민은 불행하다. 자신의 삶을 제어할 근원적인 힘의 수탁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순간 까지도 매번 최악 또는 차선을 선택할 수밖에 없도록 강요당해 왔기 때문이다. 이 번 대선에서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눈을 부릅뜨고 살펴보아도 가장 유력한 대선 후보 3인의 차이점을 발견할 수가 없다. 그들의 말과 행동, 하루걸러 쏟아내는 정책에 이르기까지 무엇이 다르다는 것인지 도통 알 수가 없다. 모두가 같다는 것은 어느 누구도 선택할 수 없다는 말과 같다. 누구를 선택해도 마찬가지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참으로 엿 같은 경우다. 선생님의 질문에 같은 답을 말하기 위해 서로 손을 쳐드는 어린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는 심경이다. 누구나 미래를 얘기하지만 그 미래가 어떤 것인지 말하는 사람은 없다. 앞 다퉈 개혁과 쇄신을 약속하지만 무엇을 어떻게 바꾸겠다는 것인지 도무지 요령부득이다. 너 나 할 것 없이 장밋빛 꿈과 희망을 내보이지만 그 외양과 내용이 모두 흐릿해서 그 형상을 알아볼 수가 없다. 생각 같아서는 모두 한데 묶어 바다 한가운데 처넣어 버렸으면 속이라도 시원하련만 그럴 수도 없으니 더욱 답답하다.

 그들은 하나같이 모든 문제와 사안들에 대해 즉답과 명확한 답변을 하지 않는다. 단지 재치 있는 말투로 논점을 흐리고, 복잡한 상황으로부터 매끄럽게 빠져나가는 기술과, 공허한 말과 의미 없는 미소로 논쟁과 대결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을 익히고 있을 뿐이다. 어떤 청탁을 거절해야 할지 분별할 수 있는 눈과, 아무리 심각한 다툼과 마주쳐도 미소를 지으면서 상대가 모르는 사이에 조용히 사라지는 기술이 아주 몸에 배어있다. 그 동안 우리가 보아온 정치인의 모습이다. 이들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도대체 언제까지 이들의 치기어린 어리광을 마냥 보아주어야만 하는 것일까? 그들 모두 아무런 타당한 이유도 없이 함부로 과거로 회귀하고, 그보다 더 제멋대로 내일을 향해 달려간다.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다.

 사회의 변혁을 꿈꾸는 사람은, 우선 대중과의 접촉면을 최대한 확대하면서 구성원과의 합의를 행동의 바탕과 기준으로 삼고 그러면서도 그 모든 과정을 민주적으로 이끌어가야만 한다. 이런 가치와 행동수칙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서 반드시 필요한 덕목이며 준거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정치란 어떤 것이든 그 뿌리를 바르게 해 초목처럼 잘 자라도록 하는 것이다. 이는 곧 그 사회의 잠재된 역량을 극대화하고 인간성을 최대한 실현하자는 것으로, 정치란 바로 신뢰이며 신뢰를 중심으로 한 구성원 모두의 역량을 결집한 결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형식이 먼저 결정된 뒤에 내용이 충전되거나 형식에 의해 내용이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일까? 우리가 만나는 정치인은 언제나 국민의 이름을 빌어 민족의 비원悲願을 말하면서도 또한 언제나 국민의 뜻을 무시한다.

 사람은 넘어진 자리 바로 그 곳을 손으로 짚어야 일어날 수 있다. 그런데도 이들은 매양 자기가 왜 넘어졌는지 조차도 잊어버린다. 자신이 넘어진 바로 그 자리를 짚어야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 마저도 잊는다. 메인 뉴스의 첫머리를 장식하는 대선 후보 세 사람의 모습을 볼 때 마다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지 알 수가 없다. 그리고는 그들의 모습을 망연하게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는 자신의 무기력함에 더욱 절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