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1. 26. 08:41ㆍ논설
4) 위기와 불황의 실체
우리가 가꾸어 온 자본주의는 결국 금융자본이 기존의 모든 산업을 지배하고 개별 기업의 생존여부까지 결정하는 엄혹한 사회를 초래하고 말았다. 우리가 현재 마주한 위기와 불황은 모두 금융자본의 탐욕과 방종으로부터 비롯된 결과다. 금융은 본시 소유의 대상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 모두가 공유하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금융마저도 상품이 되고 말았다. 따라서 금융자본도 상품 유통의 방식을 따르지 않을 수 없다. 상품 유통 이외의 소통 방식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상품의 형태를 취하지 않거나 시장이 허용하지 않는 것은 어느 것도 존재할 수 없다. 그렇다고 상품화된 금융자본의 유통을 거부할 수도, 무시할 수도 없는 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현실이다. 자본주의의 발전과정은 상품시장의 팽창과정과 일치한다.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을 해결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언제나 불황과 전쟁이었다. 자본주의 사회는 대체로 10년을 주기로 경제적 불황이 반복되어왔으며 대규모 전쟁 또한 10년의 주기로 발생했다. 그 결과와 책임은 모두 힘없고 가난한 서민들이 나누어 져야만 했다. 이는 곧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과 갈등이 경제적 파국이나 전쟁이라는 비인간적이고 폭력적인 수단에 의해 끊임없이 보정되어 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생산과 소비의 수준은 사람들의 삶을 기준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곧 그 사회 구성원의 필요에 의해서 결정되기보다는 자본 축적의 필요와 논리에 의해서 결정되어 왔다.
고도산업사회가 금융산업사회로 이행된 이래 세계 금융의 중심지인 뉴욕 월가의 금융회사들은 최고 수준의 수학자들을 경쟁적으로 영입했다. 그들은 그 곳에서 안전자산을 기축으로 한 다양한 파생금융상품을 개발하는 일에 열중했다. 오랜 모색과 수학적 사유 끝에 그들이 찾아낸 방식은 의외로 간단했다. 바로 위험 분산의 법칙이다. 상대적으로 리스크가 높은 상품과 안전성이 높은 상품을 일대일로 뒤섞어 위험도를 반으로 낮추는 이른바 물타기 수법이다. 이런 작업을 반복하면 적어도 수학 이론적으로는 리스크가 제로에 가까운 파생상품이 탄생한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이론상의 보장일 뿐이었다. 논리적으로는 자본 손실의 위험이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인 위험은 여전히 상존했다. 특정 개별상품의 위험은 감소하지만 그 만큼의 위험이 그 상품과 연계된 수많은 다른 상품으로 중첩해서 전가되는 까닭에 실제로는 여타 금융상품 전반의 위험도가 상대적으로 증가하는 것이다. 만약 시장에서 성공적으로 판매되거나 유통되던 어느 상품이 어떤 이유로든 투입된 자본의 회수가 불가능하게 되면 그 여파가 다른 상품들로 순식간에 전이되어 모든 금융상품의 부실로 이어지고 결국 금융체계의 붕괴라는 파국을 맞을 수 있다는 점을 그들은 애써 무시했다. 채권을 비롯한 모든 금융상품은 기실 관념상의 재화일 뿐 실제적 재화가 아니다. 지불 당사자가 지급 약속을 이행하지 못하는 순간 우리가 실질적 재화라고 믿었던 채권과 증권 등에 기재된 액면 금액이 한 순간에 증발해 한낱 휴지조각으로 변해버리는 것이다. 무한정의 재화 동원력과 그것을 강제할 공권력을 지니고 있는 국가 발행의 국채까지도 마찬가지일 진데, 하물며 금융회사가 판매한 회사채와 금융상품의 경우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이러한 우려는 2008년 모기지은행의 대출금 회수가 불가능해지면서 발생한 리먼브러더스 파산과 그로 인한 금융위기라는 현실로 나타났다. 문제는 이 같은 위기를 초래한 부실의 규모와 그것이 끝나는 지점을 어느 누구도 추정조차 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현재 유럽 각국이 맞고 있는 금융위기의 진원지가 미국으로 추정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1998년 우리 경제를 강타한 IMF 사태도 비슷한 맥락에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한다. 저금리의 단기차입금을 도입해 고금리의 장기차관을 제공한 우리 금융기관의 무지와 어리석음이 바로 그 끔찍한 고통과 혼란을 초래한 주범이었다. 금융자본의 끝없는 탐욕과 방종, 이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위기와 불황의 실체다.
신자유주의 체제 하에서 과잉축적 된 자본의 종국적 폐해는 자연이 장구한 세월에 걸쳐 생성하고 구축한 경제적 질서를 단 한 순간에 무너뜨린다는 데 그 심각성이 있다. 우리가 맹신해온 성장의 논리와 신화는 그 자체부터가 반 자연적이다. 그 안에서는 인간이 세계는 물론 경제의 중심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은 물론 그 어느 것도 자연과 세계의 중심이 될 수 없다. 우리가 자연을 절대로 침탈하거나 훼손해서는 안 될 생기生氣의 장場으로 인식할 때, 비로소 필요 이상의 자기 확대와 이상 증식이 특정한 부분의 불균형과 부조화를 초래해 다른 모든 것들과의 선先 순환적 생성관계를 파괴하고 돌이킬 수 없는 불행한 결과를 초래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것이 바로 자연이 구축한 질서다. 우리가 자연을 존중하고 보존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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