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는 시간이 아니라 역사를 통해서 흐른다 - 13

2012. 11. 27. 10:37논설

 5. 우리가 원하는 나라

 

 1) 우리나라

 

 동북아 대륙의 한쪽 모서리에 자리해 영토도 인구도 자원도, 그 지닌바 국력에 이르기까지 주변국에 비해 어느 것 하나 더 낫다고 내세울 것이 없으면서도 수많은 이민족의 침탈을 견뎌내면서 로마제국에 비견해도 절대 그 연대가 모자라지 않은 천년왕국을 지탱했던 나라, 한 번 왕조를 세우면 족히 5백 년은 섬기면서도 역성혁명을 당연시하고 신명과 흥이 나면 물불을 가리지 않아 무슨 어려운 일이라도 해치우며, 존장과 이웃 보살피기를 제 몸처럼 하고 스스로를 천손天孫이라 일컬으며 가무음곡을 특별히 즐겨 하늘과 땅에 경배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아 자연의 생기生氣를 북돋우고, 여러 가지 사람살이 가운데 특히 모듬살이를 중히 여겨 두레의 풍속과 말, 문화를 면면하게 이어온 나라, 이 땅은 그런 이들이 대를 이어 터를 잡고 살아온 나라다.

 반면에 오랜 역사만큼이나 더 오랜 세월에 걸쳐 가해진 극심한 수탈과 전제적인 폭압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시달리느라 인종과 굴신에 잘 길들여진 나라이기도 하다. 그들의 감당해야 할 간난과 고통이 정도가 너무 심대하므로 자신을 위한 어떤 일도 꾸미지 못하는, 그래서 더욱 조용한 은자隱者들의 땅이었다. 이 땅이 그 동안의 깊고 오랜 잠에서 깨어 난지는 얼마 되지 않는다. 그 짧은 시간에 이 나라의 주인들은 어느 누구도 해내지 못할 놀라운 일들을 참 많이도 이룩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주어진 것, 그들이 누릴 수 있는 것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오히려 많이 모자랐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궁핍과 빈곤을 천형天刑인양 그러려니 감내하며 지냈다. 그런 마음가짐이 넉넉함인지 모자람인지 알 수 없지만 이즈막엔 그 여유로운 성정마저 변하는 조짐이 보인다.

 매사에 각박해져서 작은 일에도 모질게 다투고 상대의 실수를 용납하지 않으며, 자기 앞에 놓인 남루하고 척박한 현실에 분노하며 가진 자를 증오하고 내일도 오늘과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에 절망한다. 그들의 분노와 증오와 절망이 나름대로 충분한 이유와 근거를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몸담은 나라와 사회의 주역들은 아주 오래 그들의 주장과 항변을 무시하거나 외면해왔다. 그래서 그들의 분노와 증오와 절망은 더욱 깊어져 치유는커녕 폭발 직전의 임계점에 도달했다. 지금 우리나라가 그런 지경에 이르렀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