神聖의 끝, 人性의 시작 - 98

2013. 6. 4. 07:50논설

 

 

 공자孔子는 중국의 제국 건설기에 원력집단願力集團을 조직해 왕도의식王道意識과 인의仁義의 도道를 대중에게 보급했고, 예수는 로마 제국의 융성기에 출현해 원력집단으로 하여금 천국에 대한 동경과 박애, 평등의 진리를 대중에게 전파했고, 마호메트는 사라센제국 건설 이전의 시기에 나타나 원력집단과 함께 대동포大同胞 평등의 대의로 대중을 설득했다. 이로 인해 세계제국 건설의 이상이 특정인의 머리와 가슴으로부터 벗어나 일반 대중의 꿈과 희망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하夏·은殷·주周의 문명이 한漢나라에서 중흥되었으나 일반 민중에게까지 널리 보급되지 못했으므로 그 득실을 가늠할 수 없다. 오직 공자孔子의 원력집단에 힘입어 한나라는 작은 성공을 거두었으며, 그리스 문명이 로마로 이어졌으나 역시 일반 대중에게까지 전파되지 못해 그 성과를 말할 수 없다. 다만 예수의 원력집단의 조력으로 로마 또한 작은 성공을 이루었다. 이것이 두 제국이 그 이룬 바를 일정기간 지킬 수 있었던 원인이다. 기독교 공인 이후의 로마와 사라센 제국은 원력願力이 큰 집단을 형성한 뒤에 건설되었으므로 제국이상의 실현을 기대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이룩한 문명이 전체 민중들에게 미치지 못해 그 제도와 시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힘들게 마련한 정책은 승려와 귀족들의 사리사욕과 독단으로 인해 사회구성원 전체의 공통복리를 꾀할 수 없었으므로 결국 대중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채 세속화하거나 역사의 뒤란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근세에 이르러 문명이 크게 발달해 일반 민중의 지식을 체계적으로 조직화할 수 있게 되어 세계제국의 건설에 대한 가능성이 높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지배계층은 금권만능주의金權萬能主義라는 새로운 환상에 사로잡혀 자본의 증식과 식민지 경영에 몰두할 뿐이었다. 그러나 보다 많은 부富를 축적하기 위해 추진한 식민정책이 피지배민족의 거센 반발과 저항에 부딪쳤고, 그 결과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 6년여의 기간에 걸쳐 온 세계가 진한 피비린내에 휩싸이는 참상을 빚었다. 이에 미국의 윌슨 대통령이『국제연맹』의 창설을 제창 주요 국가의 수뇌들과 제네바에 모여 구체적인 방안을 모색하기로 하면서 인류 공통의 이상인 세계제국의 건설에 대한 기대가 다시 빛을 발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국제연맹에 참여한 여러 나라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면서 그 본래의 뜻과 인류의 여망은 다시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가운데 레닌이 마르크스의 경제이론에 입각한 볼셰비키 혁명을 일으켜 제정 러시아를 전복하고 노동자, 농민을 주축으로 한 프롤레타리아 독재정권을 수립한 뒤 자본과 금권의 횡포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투쟁, 곧 계급투쟁을 전개하면서 인류사회는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재앙과 위기를 맞아야 했다.

  일본은 본시 동아시아 한 구석의 작은 섬나라에 불과했으나 일찍이 서구문명을 도입해 힘을 길러서 오끼나와, 대만, 사할린을 차례로 강점하고 한국을 병합한 후 만주를 공략하고, 중국 본토를 침공하며 영국과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켜 동남아와 남태평양을 점령해 한 때 대동아공영권大東亞共榮圈의 깃발 아래 동아시아 통일을 완성할 것 같은 기세를 떨쳤다. 제1차 세계대전 패전국인 독일의 히틀러는 나치즘과 아리안족의 영광을 내세워 흩어진 민심을 규합해 전쟁을 일으킨지 1년 만에 유럽 전역을 점령하고 다시 소련을 침공했다. 일본과 히틀러의 승리는 미국의 참전을 강요했고 제2차 세계대전으로 비화되어 두 나라의 멸망을 불러왔다. 비약적인 문명의 발달과 함께 일반 민중에게 널리 전파된 지식과 자유주의는 더 이상 폭력을 수반한 제국주의의 만행을 용납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