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0. 14. 01:40ㆍ소설
가장 높이 나는 새
멀리 하늘과 맞닿을 듯 뻗어 나간 활주로가 햇빛을 받아 둔하게 번득이고 있었다. 목덜미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지섭은 주위를 둘러봤다. 모두들 손바닥만 한 아카시아 그늘 밑에 모여서 땀을 들이고 있었다. 관제탑의 바람 포대도 더위에 지친 듯 축 늘어져 있었다. 바람 한 점 없는 날씨였다. 점프를 하기엔 아주 좋았다. 그러나 너무 더웠다. 달아오른 철모로부터 뜨거운 열기가 화이바의 지대를 통해 전해졌다. 관자놀이가 지끈거리고 눈앞이 침침해졌다. 활주로도 검은빛을 더했다. 땀에 젖은 철모의 턱끈이 살갗을 깨물었다. 주낙하산 밑의 하네스마저 땀에 젖어 있었다.
누군가 문득 투덜거렸다.
“씨팔, 이렇게 푹푹 찔 때는 좀 그만두면 어때.”
지섭은 힐끗 팀장을 바라봤다. 그의 얼굴도 벌겋게 달아 있었다. 견장에 새겨진 계급장이 햇빛을 받아 하얗게 빛났다.
비행기는 너무 늦었다. 정비병들의 군장 검사가 끝난 지도 오래였다. 그들은 벌써 두 시간째 달아오른 활주로 위에 내던져진 채였다.
관제탑 옆에서 낡은 군용 찦이 굴러왔다. 군목이었다. 그들은 아카시아 그늘로부터 벗어나 팀별로 도열했다. 경례를 받고 나서 군목은 밭은기침을 해대며 덤덤하게 말했다.
“자, 우리함께 기도합시다.”
모두들 손을 모았다. 군목의 기도 소리가 메마른 풀밭과 달아 오른 활주로 위로 퍼져 나갔다. 누렇게 말라붙은 풀잎 위로 하느님의 은총이 풀풀 날아 내렸다.
“아버지 하나님, 오늘도 당신의 어린 양들이 이곳에 모였습니다. 이처럼 좋은 날씨를 베풀어주신 아버지께 감사드리며 아울러 저들이 아버지 하나님의 보살핌을 받아 오늘도 무사히 돌아올 수 있도록 은혜 주시기를 원하옵고 한 점의 잘못이나 실수도 범하지 않도록 아버지 하나님께서 살펴 주시옵고…”
하늘에 계신 하느님의 옷자락을 깔고서 열심히 기도하는 군목의 얼굴에도 송글송글 땀이 맺혔다. 눈부시게 반짝이는 군목의 금테 안경과 야윈 어깨 너머로 지섭은 하늘을 보았다. 파란 하늘이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말라붙은 풀밭과 활주로 위에 그들을 남겨 놓고 군목이 떠나가자 지섭은 다시 아카시아 그늘을 찾았다. 철모의 턱 끈이 더욱 심하게 살갗을 물어뜯었다. 그렇지만 군장 검사가 끝나고 난 뒤에는 점프가 취소되지 않는 이상 어느 것도 헤뜨릴 수가 없었다. 앞가슴의 회전판을 약간 돌리기만 하면 몸을 조인 지대에서 간단히 벗어날 수 있었지만 그것은 범할 수 없는 금기였다. 금기,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은 수없이 많았다. 두려워해서는 안 되며, 소흘해서는 안 되며, 무엇이든 안 되게 해서는 안 되며… 모두가 성경 말씀이었다. 옛날 이스라엘의 판관들은 못하는 일이 없었다. 가뭄도 홍수도 질병도 배고픔까지도 모두 거뜬히 해결해 냈다.
현대에 와서도 그건 마찬가지였다. 어느 사회에나 판관이 있고 그들은 지배하며 명령한다. 수많은 명령들이 무리하게 행해졌다. 지섭은 가끔 혼자서 중얼거렸다.
“야, 이건 판관보다 더한데.”
대대장의 군복은 항상 풀기가 빳빳했다. 대령이 되고, 장군이 되고, 군인에게 그보다 더 신나는 일은 없다. 전투 체력의 강화, 그것이 대대장의 지휘 방침이었다.
12 km 급속 행군의 기준 시간은 한 시간이었지만 지섭들은 55분에 뛰어야 했다. 다른 대대가 그들의 기록을 갱신했다. 그들은 같은 거리를 50분에 뛰어야 했다. 50분은 무리였다. 대대장도 그걸 알고 있었다. 낙오병이 늘어났다. 대대장도 같이 뛰었다. 그는 빈 몸이었다. 병사들은 완전 군장이었다. 4km를 뛴 대대장은 풀코스를 뛴 병사보다 더 지쳤다. 의무대에서 링게르를 맞아야만 했다. 행군 속도는 1분도 단축되지 않았다. 그래도 그는 계속해서 기록 단축을 명령했다.
명령은 대개 고통을 수반한다. 명령을 내리는 사람들 대부분이 고통이 따르는 노력에 의해서만 흡족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믿는다.
누군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이제 갓 전입한 신병이었다. 지섭도 신병 때는 활주로에 서서 비행기를 기다리는 동안 그렇게 심한 요의를 느꼈다. 누구나 다 그랬다. 지상 훈련을 마치고 처음 점프를 할 때는 모두들 얼굴이 샛노래 가지고 그렇게 소변만 봤다. 막상 일을 보려고 하면 겨우 몇 방울 찔끔거리다 말면서도 얼마 되지 않아 뱃속에서 오줌 줄기가 다시 꿈틀거렸다. 터무니없이 높은 곳으로부터 뛰어 내려야 한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려서일 것이다. 지상으로의 낙하, 그것은 어쩜 주검(屍)이며 어둠이며 반쯤 먹은 요깡이며..., 의사들은 탑승 전의 심한 요의가 교감신경의 흥분으로 콩팥 위의 부산피질에서 분비된 아드레날린이 혈관을 수축하는 까닭이라지만 하늘을 날아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몸의 비중을 조금이라도 더 가볍게 유지하려는 본능적이 생리 작용이라는 사람도 있었다. 어쨌든 탑승 전에 느끼는 요의처럼 사람을 초조하고 귀찮게 하는 것은 없다. 팀장은 여전히 얼굴을 찌푸린 채였고 비행기도 여전히 오지 않았다. 그는 언제 보아도 싸느랗게 굳은 표정이다. 하기야 팀장의 표정이 굳어 있지 않다면 누가 그를 두려워하겠는가? 팀장의 왼편 귀밑에는 깊은 흉터가 있다. 지섭이 물어뜯은 상처가 남긴 흉터였다. 대개의 경우 팀장들은 샌드위치가 된다. 부하들을 아낄수록 더욱 그렇다.
자대생활에 조금 익숙해지고 나면 누구나 전출을 희망했다. 지섭도 그랬다. 계속되는 훈련을 견딜 수가 없었다. 매일처럼 죽음을 마주하는 생활이었다.
어떤 비상수단을 써서라도 그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자해라도 할 참이었다. 빵을 까도 좋았다. 전입 3개월을 넘기기가 그렇게 힘들었다. 정 안되면 탈영이라도 할 생각이었다. 그때 고향 선배가 군의관으로 부임해 왔다. 지섭은 그가 하느님처럼 생각되었다.
“형, 어떻게 좀 해줘요. 견딜 수가 없다구.”
“뭘 어떻게 해 달란 말이니?”
“후송만 시켜 줘. 그 뒨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자식 후송이 그렇게 쉬운 줄 아니?”
좀처럼 말을 들어줄 것 같지 않았지만 지섭은 포기하지 않았다. 한 달쯤 계속해서 졸라대자 그는 마지못해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그럼 말야 너 점프하기 전에 비행기 안에서 지랄을 한번 쳐라. 그런데 옷에 오줌을 눠야 돼. 자신 있니?”
후송을 시켜 준다는 말에 귀가 번쩍 뜨인 지섭은 무조건 대답부터 했다.
“까짓거 문제없어.”
그는 지섭의 말을 믿을 수 없는 모양이었다.
“꼭 오줌을 눠야 돼. 그래야만 된다구.”
“걱정 마, 그런데 왜 꼭 오줌을 누라는 거지?”
“임마 사지 멀쩡한 놈을 어떻게 후송시키니? 정신 질환이라고 할밖에.”
“아니, 그럼 날 정신병자로 만든단 말야?”
“아니, 고소공포증이라구 그런게 있어.”
지섭은 다음날 탑승기 안에서 일을 벌였다. 정박선을 붙들고 늘어진 채 악을 쓰며 낙하를 거부했다.
“싫단 말야, 싫어. 난 죽기 싫어 이 씨팔새끼들, 왜 날 죽이려는 거야, 놔, 노라구.”
팀장은 어이가 없는 모양이었다. 발광을 하는 지섭의 팔을 꺾어 쥐고 따귀를 때렸다. 그런데 오줌이 나오지 않았다. 낭패였다. 탑승을 하고 난 뒤에는 절대 요의를 느끼지 않는 것이 낙하병의 습성이었다. 후송은 틀린 일이었다. 정말 미친놈이 되는 수밖에 없었다. 팀장이 비명을 질렀다. 낙하조장이 주먹질을 했지만 지섭은 끝내 놓지 않았다. 영창 감이었다. 정당한 이유 없이 낙하를 거부하는 일은 명령 불복종이다. 팀장의 말 한마디로 군재에 회부될 판이었다. 군의관도 힘이 될 수 없을 터였다. 방뇨만이 고소공포증의 확실한 증상이라고 몇 번이나 다짐했었다. 그러나 팀장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귀밑의 상처를 만지며 지섭을 보고 싱긋 웃었을 뿐이다. 지섭은 그 때 팀장이 새드위치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다시는 전출을 계획하지 않았다. 그럴 수가 없었다. 햇빛이 깨진 맥주병처럼 날을 세우며 다가섰다. 구두 밑창을 잡아당기는 활주로의 콜탈도 검다 못해 하얗게 반짝거렸다. 개미가 몇 마리 풀잎 사이를 부지런히 기어가고 있었다. 훈련소에서 마지막 교육이 끝나고 배출이 가까워지면 으레 터무니없는 소문이 꼬리를 물고 돌아다녔다. 그야말로 근거 없는 카더라 방송이었지만 누구나 그 말을 믿고 싶어 했다.
“이번 병력은 모두 카츄샤 라더라.”
“헌병 병과가 많다던데?”
“아냐 임마 모두 103보래.”
“마, 시끄러 아무데루나 팔리겠지 뭐.”
듣기에 달콤하거나 입맛이 쓴 루머들이 진실인 양 나돌았다. 교육대 분류과에서 온 중사가 그들의 운명을 재단했다. 지섭은 특전사로 배속되었다. 그는 친하게 지낸 동기들과 인사도 나누지 못한 채 트럭을 타야 했다.
역에는 서울행 야간 군용열차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열차 뿐 아니었다. 어떻게들 알았는지 가족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트럭 위에서 지섭은 눈을 감았다. 그에겐 찾아올 부모도 가까이 사는 친척도 없었다.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로 눈을 감고 있었다. 나중에 열차 속에서 들은 이야기지만 가족들이 전송을 나온 아이들도 돈 없고 빽 없어서 나만 혼자 당한다는 류의 묘한 배반감, 서운함, 그런 것 때문에 선뜻 아는 척을 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나만 왜 그런 곳으로 팔려 가는가, 어떻게 좀 손을 써 주지 않고, 하는 따위의 서운함이 누구에게나 조금씩 있었다.
인솔 조교들이 힘들여 길을 튼 뒤에야 그들은 트럭에서 내렸다. 수많은 부형들이 한데 몰려 이름을 부르고 손을 흔들었지만 그들도 잘 분별할 수 없었을 것이다. 생판 남이 되어 버린 자식의 모습을 보며 그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낯선 아들의 모습에서 무엇을 찾아냈을까?
“어디로 가니, 어디로?”
“아이쿠, 좀 비켜요 영섭아.”
지섭들 보다 조금 늦게 도착한 일반 병력과 가족들로 역 앞 광장은 온통 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인솔 조교들이 개찰구를 막고 서서 눈을 부라리며 고함을 질렀다. 두어두렴. 만날 사람은 만나래라 빌어먹을, 가는 거야 그냥.
열차가 출발을 하고 나서야 마음이 놓인 듯 조교들은 객차 밖으로 나가는 일 외엔 감시를 풀었다. 어찌어찌 역에서 돈을 받은 아이들이 술을 샀다. 두 달 만에 맛보는 소주에 그들은 흠뻑 취했다. 무슨 심사에선지 조교들이 술심부름을 기꺼이 해줬다. 처음에는 멈칫멈칫 몸을 사리며 눈치를 살피던 아이들까지도 마음 놓고 술을 마셨다.
의자 밑에 쌓인 소주병을 걷어차며 그들은 죽어라고 술을 마셨다. 술을 마시는 동안에도 열차는 쉬지 않고 달렸다. 스쳐 지나는 간이역의 푸른 외등이 보일 뿐 창밖은 온통 진한 어둠이었다.
덜컹거리며 달리는 열차의 흔들림에 맞추어 그들은 노래를 불렀다. 악을 쓰다가 욕지거리를 하다가 술을 마시다가 다시 노래를 부르고 모두가 조금씩 미쳐 가고 있었다.
“씨팔 언놈은 자충이나 하고.”
“니미럴, 칵 받아버릴까 부다.”
“짝순이에~게~로~ 편지야 잘이 잘이 가거라.”
조교들이 저희끼리 모여 앉아 닭다리를 뜯고 있었다. 닭다리 같은 건 사실 흔전만전이었다. 역에서 부형을 만난 녀석들은 모두 서너 마리씩이나 통닭을 전해 받았다. 오랜만에 먹어 보는 술과 고기에 취해서 객차가 떠나가도록 법석을 떨던 그들도 결국 하나씩 나가떨어지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질펀히 쓰러져 잠든 동료들의 모습을 보며 지섭도 눈을 감았다. 머릿속이 빙빙 잡아 돌았다. 누군가 왝왝 토악질을 하고 있었다. 토해라, 토하고 싶은 것 모두, 그래서 후련한 가슴으로 내일을 봐라. 이 신나는 세상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특전사다.
햇빛이 점점 열기를 더했다. 찐다는 것과 탄다는 것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콜탈이 녹아드는 활주로의 열기 때문에 숨을 쉬는 일조차 힘이 들었다. 담배를 피우던 팀장이 반쯤 남은 꽁초를 군화 뒷축으로 짓이겼다.
비행기는 너무 늦었다. 신병들이 몇 자리를 떠나 서성이고 있었다. 지섭도 첫 점프 때는 정신이 없었다.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 아무것도 기억할 수가 없었다.
“야, 누가 개인행동 하랬나!”
팀장의 말에 질겁을 한 신병들이 재빨리 제 자리를 찾아들었다. 구름이 몇 점 한가롭게 흐르고 있었다.
밤새도록 어둠을 뚫고 달린 열차는 눈부신 햇빛을 되받으며 한강을 지나고 있었다. 간밤의 술 탓인지 골이 쑤시고 목이 탔지만 물을 지닌 놈은 아무도 없었다.
용산역에서 열차를 내린 지섭들은 TMO 옆 광장에 모여 아침 식사 대신 건빵을 한 봉지씩 받았다. 열차에서 내린 병력들이 어디론가 쉴새 없이 떠나갔다. 그들이 모두 떠난 뒤에도 지섭들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이른 아침의 역 주변을 서성이는 꼬마들에게 건빵을 나누어주며 지섭들은 기다렸다. 무엇이든 나타나 어디로든 데려가 줄 것을.
훈련소에서 두 달을 보내는 동안 그들은 모두 남으로부터 지시를 받는 일에 익숙해 있었다. 사람을 인형처럼 만드는데 두 달은 아주 충분한 시간이었다. 무엇을 해야 할지 어디로 가야할지 모른 채로 그들은 따불백 위에 옹송그리고 앉아 무턱대고 기다렸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해는 오정이 다 되어 보였다. TMO에서 까만 베레모를 쓴 위장복 차림의 군인이 서류 봉투를 들고 나왔다. 뒤따라 나온 인솔 조교가 손가락으로 그들을 가리켰다. 굽이 높은 군화 뒷축을 올리며 다가온 그는 중사였다. 가무스름한 얼굴에 눈빛이 매서웠다. 인원 점검을 마친 중사는 그들을 트럭에 태우고 서울을 빠져나갔다. 승객을 빼곡이 태운 시내버스가 스쳐 갔다. 까만 승용차와 택시들도 지나갔다. 트럭 위에서 지섭들은 손을 흔들었다. 사랑해, 당신만을 사랑해, 사람 같아 보이니, 죽여 주누만, 빌어먹을. 감자를 먹이는 놈도 있었다. 모두들 마음이 들떠 있었다. 군용 트럭 위라고 해서 서울의 거리가 달라 보일리는 없다. 저걸 그냥, 여자들의 매끈한 종아리가 널려 있었다. 도심을 빠져 강변도로를 따라 가면서 그들은 내내 손을 흔들었다. 말라붙은 강줄기가 저만큼 물러선 채 그들을 맞았다. 자갈을 캐는 채취선들이 크릉거리며 검은 연기를 뱉어 내고 있었다.
이제 막 공사를 시작한 아파트촌을 지나고 비탈을 넘어 그들은 거대한 아치형 간판이 서 있는 영문 앞에 도착했다. 검은 베레모 차림의 위병이 둘, 눈도 깜박이지 않고 서 있었다. 간판에는 “안 되면 되게 하라”는 말이 쓰여 있었다. 억지스러운 간판의 구호를 지섭은 못 본체 했다. 그 간판에 적힌 구호와 돌처럼 굳어있는 위병들의 검은 베레모는 아주 잘 어울려 보였다.
부대 안에서 점심을 먹는 동안 지섭은 앞으로 자신이 받아야 할 고통의 질을 가늠할 수 있었다. 식기를 들고 자리에 앉자마자 그들을 인솔해온 중사가 소리쳤다.
“식사완료 30초 전.”
식기를 반도 채 비우지 못했을 때 중사가 다시 소리쳤다.
“식사 끝.”
중사 옆에서 미처 일어나지 못하고 꾸물거리던 아이들이 조교들의 군화에 정강이를 채이고 나뒹굴었다.
“식기 세척하고 오는 시간 5초. 하나 둘 셋...”
세척은커녕 물칠도 못하고 뛰었지만 지섭들은 동작이 늦다고 모조리 낮은 포복을 해야만 했다. 뱃속에서 밥알들이 하나씩 물구나무를 서는 것 같았다.
“탑승 준비!”
팀장이 외치는 소리에 지섭은 하늘과 맞닿은 활주로의 끝을 바라봤다. C-123이 검고 둔한 몸을 세우자 하늘은 온통 마른 먼지로 가득해졌다.
“탑승.”
60인승의 수송기 속으로 그들 5/50 낙하병력 전원이 빨려들듯 탑승을 마치자 기체는 활주로 위를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관제탑과 아카시아 나무들이 몸을 떨면서 스쳐갔다. 기체가 문득 가벼운 진동과 함께 뛰어 오르는 순간 지섭은 하늘 그 안에 있었다. 활주로가 가는 띠처럼 멀어져 갔다. 기체가 고도를 잡자 팀장은 헤치를 열었다. 시원한 바람과 함께 카랑거리는 엔진의 소음이 몰려들었다. 모든 의사표시는 완수동작에 의했다. 사실 말이란 얼마나 복잡하고 불편한 표현수단인가? 탑승 직후 기체가 막 고도를 잡고 비행하기 시작할 때의 그 짧은 시간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평안과 안식과 그러면서도 묘하게 조금은 긴장되는 마음의 흔들림을, 간헐하듯 귓전을 울리는 배기음과 이가 시린 바람의 분류 속에 마주앉아 그들은 각기 장비를 점검했다. 카나피는 제대로 잠겨있는가? 회전판은 제자리에 있는가?
훈련이 시작된 첫날부터 지섭은 뺑뺑이를 돌았다. 4주 동안의 교육과정에 대한 개괄적인 설명이 끝나자 교관은 접지동작에 대해서 설명했다.
“접지동작에는 다음 네 가지가 있다. 전면 좌측 접지, 전면 우측접지, 후면 좌측접지, 후면 우측접지로 전면 접지동작은 낙하시 바람을 등으로 받을 때 후면 접지는 바람이 앞에서 불 때 각각 취한다. 시범조교의 동작을 잘 보아 두도록, 훈련도중 이상이 있는 자는 그때그때 즉시 현금으로 댓가를 지불한다. 시범조교 앞으로.”
조교가 1m 높이의 목대에서 뛰어 내리며 자세를 취했다. 지섭들은 두 눈을 크게 뜨고서 그의 동작을 살폈다. 조교는 두 손을 눈높이로 들어 올린 다음 무릎을 약간 굽힌 자세로 도약한 뒤 발끝으로 가볍게 접지하고 이어서 왼쪽 종아리, 허벅지, 엉덩이, 등, 오른쪽 어깨의 순으로 몸을 굴리며 가볍게 일어섰다. 그 간단해 보이는 동작이 아무래도 잘 취해지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교관은 그들의 심신이 풀어져 동서를 분별할 수 없을 때까지 특수 훈련을 가한 뒤에 동작을 취하도록 했으니까.
교관은 인간의 체력이 도달할 수 있는 극한까지 그들을 휘몰아 간 다음 연습동작을 취하도록 했다. 가물가물하게 멀어 보이는 반환점을 앞뒤의 동료와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며 뛰어야 했다. 더욱 사람을 지치게 만드는 것은 달리는 속도가 일정하지 않다는 점이었다. 체력의 소모가 그처럼 심한 운동이 또 있을까? 앞 사람과의 거리가 조금이라도 떨어지면 군데군데 지켜서 있는 조교들로부터 곡괭이라 불리는 체벌의 세례를 받아야 했다. 군화발로 철모를 사정없이 걷어찼다. 가슴에 매단 보조낙하산 때문에 앞으로 쏠리는 몸의 중심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팠다. 정신없이 뛰다 보면 목이 타고 허리가 굽고 발바닥이 불에 데인 듯 뜨거워지면서 하늘이 노랗게 물들어 보였다. 일주일동안의 훈련 끝에 지섭들은 조교들보다도 더 익숙하게 접지동작을 취하게 되었다. 아무리 몽롱한 의식 속에서도 일단 뛰었다 하면 제 동작이 나왔다. 그것은 조건반사 같은 것이었다. 먹이를 주며 가꾸는 단순한 동작 이상의 것은 아니었다. 처음 한 주일 동안 지섭은 자신이 개 훈련소의 개새끼와 조금도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다. 교관이 시키는 동작을 제대로 취하면 잠시 휴식이 주어졌다. 제대로 못하면 혹심한 체벌이 돌아왔다. 하루 세끼 먹이를 받고 잠을 자고 개처럼 헐떡이며 같은 동작을 반복했다. 교관의 요구는 한결같았다. 숙련, 반복되는 훈련에 의해서 인간은 얼마든지 변형되었다. 작은 동작 하나라도 제대로 익히지 않았을 경우 실제 낙하 훈련시 생명을 잃게 된다는 교관의 말이 그들을 꼼짝 못하고 훈련에 열중하도록 했다. 족음보다 더 고통스런 훈련을 죽음에 대한 공포가 견디게 했다.
땀에 젖어 있던 옷이 선득거렸다. 창밖으로 연초록의 바다가 보였다. 바다는 푸른 융단처럼 펼쳐 있었다. 고무공을 떨어뜨리면 금시 퉁 하고 튀어오를 것만 같았다. 시야가 막히면서 창이 뿌옇게 흐려졌다. 비행기는 구름 속을 지나고 있었다. 습한 바람이 코끝을 스쳤다. 다시 푸른 바다가 햇빛을 받으며 밝게 떠올랐다. 섬들이 가뭇가뭇 검은 얼룩이 양 흘러가고 수평선이 비스듬히 가로놓인 채 발밑에서 돌고 있었다. 빙글거리며 돌아가는 바다와 땅. 하늘에서 내려보는 지상의 것들은 대개 입체감을 상실한다. 살아있는 것의 생명이 실감되지 않는다. 표본상자 위에 꽃힌 곤충처럼 정체되어 있었다. 오밀조밀 모여 있는 도시의 집들이 꼭 개미굴처럼 느껴졌다. 꿈틀거리는 것들, 머리 위에서 내려다보는 인간의 움직임은 필시 꿈틀거림이다. 벌레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 빌딩의 창에서 거리를 내려 보고 헛구역을 치지 않을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난장이의 이야기를 쓰는 작가가 있었다. 살기에 지친 난장이는 자신이 달나라에 가 있기를 원했다. 달에는 자신에게 아주 걸맞은 일거리가 있으리라고 굳게 믿는 난장이였다. 어느 날 난장이는 벽돌공장의 높은 굴뚝 위에서 난생 처음의 비상을 시작했다. 그것은 곧 죽음이었다. 난장이와는 다른 이유로 지섭도 비상을 한다. 그러나 지섭의 비상은 항기 새로운 생환이었다. 점프가 끝난 뒤 지섭은 매번 자신이 새로 태어난 듯한 느낌이 되곤 했다. 만약 지섭이 난장이의 이야기를 다시 쓸 수만 있다면 그의 비상이 죽음이 아닌 새로운 삶이라고 말할 터였다. 바다를 막아 개답공사가 한창인 간척지가 보였다. 넓다고 해야 1200의 고도에서 내려다보는 간척지는 손바닥만 했다.
팀장이 엄지손가락을 구부린 채 팔을 벌려 신호를 했다.
‘낙하지역 4분전.’
낙하조장이 해치 옆에 바싹 엎드려 패널(낙하지점의 표지)을 확인하고 있었다. 팀장이 다시 손바닥을 위로 향해서 흔들었다.
‘일어서.’
지섭들은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손으로 주낙하산에 달린 생명줄을 잡았다. 팀장이 오른손을 머리 위로 올렸다.
‘고리줄 걸어.’
지섭은 정박선에 달려있는 고리에 생명줄을 연결했다. 팀장이 두 손을 귀 옆에 대고 흔들었다.
‘장비검사 보고.’
보조낙하산의 손잡이와 생명줄의 연결부분을 점검한 지섭은 앞사람의 엉덩이를 가볍게 쳤다.
‘이상 무.’
패널을 확인한 조장이 드디어 자신의 생명줄을 정박선에 연결했다.
‘낙하지점 확인.’
팀장이 머리 위로 높게 올렸던 팔을 재빨리 내렸다.
‘낙하!’
눈앞에 일렬로 서 있던 동료들이 하나씩 순식간에 사라져 갔다. 어두운 공동으로부터 밝고 푸른 하늘로 빠져 나갔다. 목적과 방법과 내용을 혼동하며 시속 600의 비행체로부터 떨어져 갔다. 개인 간 낙하시차는 1초였다. 1초 동안의 시간에 사람은 무슨 짓을 할 수 있는가? 1초 동안에 그들은 다시 태어난다. 어쩌면 곧 죽음일수도 있는 행위를 거침없이 해냈다. 무엇이 그들을 그토록 거침없게 만들었을까? 거침없다는 것은 얼마쯤 무모하고 어리석다는 말이다. 서른 두 개의 가느다란 나일론사와 직경 10m의 얇은 헝겊조각을 믿고서 그것이 곧 죽음일 수도 있는 행위를 불과 1초 동안에 결행한다. 그러나 믿음이라는 것이 사람을 그토록 거침없게 만드는가? ‘인간은 행위 이전에 사유한다’ 개소리였다. 인간은 행위 이전에 흔히 복종한다. 복종에는 적어도 책임이 없다. 자신의 의지와 상반된 일에는 책임이 수반되지 않는다. 책임이 따르지 않는 이상 권리도 인정되지 않는다. 정당한 권리의 행사가 있을 수 없다. 그것이 사람일까? 명령에 의해서 자신의 생명까지도 내던져버리는 그것을 사람이라 할 수 있을까?
접지동작이 끝나자 바로 이어서 모형문 훈련이 있었다. 실제 낙하시 취해야 할 동작을 연습하기 위한 곳이었다. C-123기의 모형문에서 지섭은 자꾸 아찔한 현기를 느꼈다. 10평방미터의 모래밭이 그렇게 아득하고 넓어 보일 수가 없었다. 불과 3m 높이의 목대에서 뛰어내리는 짧은 시간에 무려 대여섯가지의 동작을 취해야 했다. 자세가 조금만 틀리면 뒤에 지키고 있던 조교들이 냅다 허벅지를 걷어찼다. 그들에게 걷어채이는 날이면 자세고 뭐고 없었다. 볼품없이 모래밭에 나딩굴기 마련이었다.
“1만, 2만, 3만.”
“산개검사.”
기능고장. 따위의 말을 목청껏 외치며 예비낙하산을 펴고 접지동작을 취해야 하는데도 그럴 시간이 없었다. ‘산개검사’라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몸은 모래밭 위에서 롤링을 했다. 그 때마다 교관은 8자돌림을 시켰다. 겹친 피로때문에 입술이 부르트고 눈앞이 가물거렸다.
세찬 기류가 눈을 찔렀다. 지섭은 어느새 해치 바로 앞에 있었다. 하늘 안에서 또 다른 하늘을 보고 있었다. 막막하게 퍼져나간 푸른 공간, 해치 앞에서 바라보는 하늘은 매번 더욱 푸르고 막막했다. 무엇 하나 걸치지 않은 공간, 그것은 곧 자유며, 실체며, 완벽한 개체이며 거부될 수 없는 양식(樣式)이었다. 빌어먹을 놈의 양식(樣式), 그들은 뛰어내리는 일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3 주간에 걸친 지상훈련의 마지막 과정은 모형탑이었다. 인간이 가장 두려움을 느낀다는 11m높이의 목대 위에서 밑으로 뛰어 내려야 했다. 지그재그로 올라가는 사다리를 꿈틀거리며 기어올랐다.
“공수, 멸공.”
“물개 좃, 정력제.”
목이 터져라 외쳐대며 8명씩 한 조가 되어 탑 안으로 들어가면 미리 기다리고 있던 조교가 닝글 닝글 웃으며 뺑뺑이를 돌렸다.
‘울려고 내가 왔던가’를 부르게 하다가 싫증이 나면 체조를 시켰다.
인간이 취할 수 있는 자세 중에서 가장 힘든 것만 골라 만들었다는 공수체조를 쉬지 않고 시켰다.
차례가 되면 잽싸게 뛰어나가 생명줄을 정박선에 연결시키고 부동자세로 서서 원기 왕성하게 복창해야 했다.
“교번 76번, 한, 지, 섭.”
조교들이 키들거리며 묻곤 했다.
“자신 있나?”
“자신 있습니다.”
“애인 있나?”
“애인 있습니다.”
“애인 이름 3회 복창.”
“영자야, 순자야, 말자야.”
“좋아, 낙하.”
아무리 발밑을 보지 않으려 해도 소용이 없었다. 두 눈을 질끈 감아보기도 하지만 쓸데없는 짓이었다. 맞은편 둔덕까지 뻗어나간 케이블은 끝이 없어 보였고 눈 아래 지면이 뿌옇게 흐려졌다. 자꾸만 앞으로 쏠리는 몸의 중심을 잡으려고 뒤로 버팅기다 보면 조교의 발이 엉덩이를 걷어찼다. 중심을 잃은 채 엉겁결에 나가 어지면서 제 동작을 취할 수는 도저히 없었다. 실제 낙하시에 필요한 동작을 모두 취하지 못하면 밑에서 보고 있던 교관이 어김없이 불합격 딱지를 붙였고 다시 합격이 될 때까지 점프는 끝없이 계속되었다. 반복, 반복, 끝없이 반복되는 뜀질, 하늘을 날기 위해서 그들은 뜀질을 했다. 어떤 자식이 사람에게 하늘을 날라고 했어.
하늘을 나는 것에는 새들이 있다. 고통은 잘못이었다. 새들은 고통스럽게 날지 않는다. 그들은 지상을 떠나 다시 자유롭게 지상으로 돌아온다. 하기야 사람도 하늘을 날지. 그러나 새들처럼 자유롭게 날지 못해. 대개의 경우 날거나 아니면 떨어져. 떨어지는 방법을 배우려고 이 지랄이야. 하늘을 나는 일이 사람에게는 죽음이며 고독이며 부자유다. 새들에게는 그것이 생활이며 안식이며 사는 것 자체다. 꼭 같이 하늘을 날면서도 어찌 그것이 서로 다를 수 있을까? 떨어지는 법, 그것이 문제였다. 본시부터 하늘을 나는 새들에게도 날지 못하고 떨어져 내리는 것은 바로 죽음이며 고독이며 부자유다. 허지만 본시부터 하늘을 날지 못하던 사람에겐 그것이 생환이다. 살아나는 법, 살기 위해서 이 지랄이야. 그래 떨어지는 것이 사는 것이라는 이 새로운 진리를 알아야 겠어. 자, 뛰자, 자꾸만 뛰는 거야. 그러다 보면 뭔가 되겠지.
지상훈련을 끝낸 지섭의 얼굴은 반쪽이 되었다.
누군가 뒤에서 등을 쳤다. 지섭은 흠칫 놀라 무릎을 굽혔다 펴며 힘껏 앞으로 뛰었다. 푸른 하늘이 쾡한 모습으로 펼쳐지고 온 몸이 중량을 잃었다. 밝은 햇빛이 눈을 찌르고 그보다 먼저 뛴 동료들의 낙하산이 곱게 펴지고 있었다. 기체는 벌써 50m 전방이었다. 몸을 날리는 팀장의 모습이 언뜻 눈에 비쳤다. 지섭은 버릇처럼 중얼거렸다.
일만 이만 삼만…. 당연히 어깨 부위에 전해져야 할 충격이 없었다. 머리 위 하늘을 올려다 본 지섭은 그만 아찔하고 말았다. 낙하산이 피다 버린 엽연초처럼 비비꼬인 채 펴지지 않고 있었다. 그는 돌멩이처럼 낙하하기 시작했다. 발밑에서 검은 지면이 무서운 속도로 부풀어 올랐다. 바람이 금속성의 소리를 지르며 귓전을 스쳐갔다. 온몸의 피가 그대로 굳어버리는 듯 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가 없었다.
누구 하나 도와줄 사람도 없었다. 막막하게 푸른 하늘을 그는 혼자서 떨어져 내렸다. 가슴을 펴야 해, 머리를 젖혀야지, 팔 앞으로, 상체의 중량을 죽여야 해. 몸이 앞으로 기울고 있었다. 도는군, 돌기 시작하면 끝장이야. 팔을 벌려, 그래도 머리는 지상을 향했다. 이대로 떨어지는가? 상체의 중량을 죽여야 한다는 것은 생각뿐이었다. 그의 머리는 지면을 향하고 있었다. 도는군, 두 바퀴, 세 바퀴, 다섯 바퀴면 죽어, 나는 돌멩이처럼 떨어지게 될 거야, 진짜 떨어지는 거야, 새처럼 죽게 될 거야, 그렇구나, 새들에게 죽음인 것은 사람에게도 죽음이구나, 그래, 이제 눈 깜짝할 사이에 내 몸은 부서져 산산이 훝어 고 말거야, 정비병은 어떤 자식일까? 목사가 그랬지, 무사히 돌아올 것이라고, 개자식. 그의 오장(五臟)에는 영원이 다소 깃들고 있었다. 누군가 내 줄을 끊어버렸어. 이제 곧 죽을 거야, 죽고 말 거야, 사람들이 내게 술잔을 내밀고 있어, 생명의 술잔을, 아니 그 따위 술잔은 필요 없어, 나는 나이고 싶어, 이대로 죽을 순 없어, 나는 알아, 이제 닥칠 나의 죽음이 누구의 것인지, 제기랄 죽음마저도 제 것일 수 없다니, 이제 곧 죽겠지, 곧은 믿음이며 확신이며 두려움이며, 그래 죽기는 싫어, 죽음이란 미리 마련되어 있는 것이 아냐. 착한 것도 아니고, 이대로 죽을 수는 없어. 그러나 죽음은 그의 피를 적시고 혈관을 옥죄며 머리까지 가득 차오르고 있었다. 안 돼, 거부해야지 내것이 아닌 이 빌어먹을 놈의 죽음을 거부해야만 해. 죽음은 여기저기 도처에 있었다. 모든 것의 내부에 쌓여 있었다. 그리고 어느 곳에서나 모습을 드러냈다. 모두가 뒤죽박죽 엉망으로 뒤엉켜 회오리치고 있었다. 사람이 이렇게 깝북 죽어버릴 수도 있는 것일까? 그래 죽을 수 있어. 그렇게도 죽어, 그렇지만, 그렇지만 살아야지. 살아야 해, 머리를 제쳐 머리를, 그리고 팔을 뻗어, 머리 위로, 팔 앞으로, 그래 앞으로, 팔을 펴, 팔을, 머리 제쳐, 그 다음엔, 그 다음엔, 그리고 어떻게 해야지? 그 다음엔, 그 다음엔...
죽음은 바로 어둠이었다. 모든 것이 파묻혀 망각되어지는, 그리고 다시 헤어날 수 없는 깊은 어둠이었다. 한 점의 빛도 없는, 명령도, 판관도, 팀장도, 사랑도, 고통도, 그 다른 어느 것도 없는 어둠은 어쩜 자유였다. 어둠이 잔뜩 입을 벌린 채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섭은 문득 벽돌공장의 굴뚝에서 비행하다 죽은 난장이의 모습을 생각했다. 난장이 이야기를 쓴 그 소설쟁이가 옳았다. 지상으로의 비행은 역시 죽음이었다. 이대로 죽어? 그럴 수는 없었다. 지섭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격심한 통증이 관자놀이를 스치고 지나갔다. 예비낙하산의 손잡이를 힘껏 잡아당기며 머리를 돌렸다. ‘챙’하고 고정 핀이 풀리는 소리와 함께 낙하산이 튕겨 나갔다. 나이자 줄을 풀어내며 지섭은 다시 입술을 깨물었다. 비릿한 내음이 입안을 매웠다. 울컥 카나피와 하네스가 등을 조였다. 보조낙하산이 바람을 받고 한껏 부풀어 있었다. 고도는 600이었다.
새하얀 낙하산의 기공으로 파란 하늘이 안겨왔다. 그보다 먼저 뛰어내린 동료들이 머리 위에서 손짓을 하며 분분히 내려오고 있었다. 제 몫을 다하지 못했던 주낙하산이 그를 지나서 길게 늘어졌다.
검은 갯벌과 푸른 바다가 부드러운 몸짓으로 그를 부르고 있었다. 개답공사 중인 불도저들이 느리게 기어 다니고 있었다.
어찌 보면 불도저는 전혀 움직이지 않는 것 같기도 했다. 지섭은 문득 자신이 정지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늘의 정적은 그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지상에 있는 것들을 같은 정적으로 보이게 했다. 하늘과 땅은 서로 접착하고 있었다.
불도저 위에서 사람들이 손을 흔들었다. 그들의 손짓이 정답게 안겨왔다. 그들은 적어도 꿈틀거리지 않았다. 꿈틀거리는 것, 사는 것은 곧 움직임이었다.
그는 시속 7m의 속도로 낙하하고 있었다.
지면에 달라붙어 거의 움직이지 않아 보이던 불도저가 흙먼지를 피우고 있었다. 지상100m, 지섭은 나이자 줄을 목 어림까지 잡아 당겼다. 낙하산의 배공 면적이 적어지면서 그는 초속 10m의 속도로 낙하했다.
갯벌 밖으로 드러난 조개껍질들이 햇빛을 받아 하얗게 빛났다.
지상 30m, 발밑에 늘어져 있던 주낙하산이 지면을 스쳤다. 그는 힘껏 잡아당겼던 나이자를 놓았다. 배공 면적이 커지자 몸이 둥실 위로 치솟는 듯 했다. 지섭은 사뿐히 내려앉았다.
무사히 안착한 지섭은 몸을 굴리며 카나피 뭉치를 분리했다. 바람이 그의 안착을 축복이라도 하듯 바다 저편으로부터 불어왔다. 푸른 하늘에 마음껏 피웠던 인공의 꽃을 거두며 그의 동료들이 하나씩 내리고 있었다.
낙하산을 거둘 생각도 잊은 채로 지섭은 발밑의 갯벌을 보며 가만히 서 있었다. 갯강구가 몇 마리 기어가고 있었다. 채찍 모양의 긴 촉각을 나불대며 암갈색의 등을 번득이며 기어가고 있었다. 갯지렁이도 두어 마리 갯벌 속으로 기어들고 있었다. 그것은 움직임이었다.
지섭은 하늘을 봤다. 쨍한 햇빛이 아프게 눈을 찔렀다. 살았군, 난 정말로 살아 있는 거로군. 지섭은 허물어지듯 주저앉았다. 손가락 틈으로 내보인 하늘이 검게 물들어 있었다. 팀장의 얼굴이 눈앞을 스쳐갔다. 낙하산을 거둔 동료들이 햇빛에 휩싸여 아른거렸다. 바다가 그들을 감싸고 있었다. 눈부신 햇살과 바다를 가르며 그들은 헤엄치듯 다가왔다. 소리치며 뛰어왔다. 불도저와 갯벌이 그들과 함께 맴을 돌았다. 지섭은 그만 일어나고 싶었다. 다시 한 번 하늘을 날고 싶었다.
갈매기들이 몇 끼룩거리며 가맣게 하늘을 날아오르고 있었다. 하늘은 언제나처럼 푸르고 막막했다. 그들의 비상을 지켜보던 지섭은 아주 편히 길게 눕고 말았다. 그렇군, 사람은 죽지 않고선 절대 하늘을 날 수 없는 거로군.
지섭은 깜북 정신을 놓았다. 어디선가 물씬 흙 내음이 풍겨왔다.
- 끝 -
'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주 특별한 꿈 - 5 (0) | 2010.01.15 |
---|---|
아주 특별한 꿈 - 4 (0) | 2010.01.15 |
아주 특별한 꿈 -3 (0) | 2010.01.15 |
아주특별한 꿈 - 2 (0) | 2010.01.07 |
아주 특별한 꿈 -1 (0) | 2010.01.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