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生의 길목에서 - 믿음과 외로움

2010. 1. 7. 09:26단상

 

 

 - 햇살이나 산, 강이 있다는 사실을 믿고 수용하는 데는 어떤 믿음도 필요하지 않다. 남편과 아내는 싸우기 마련이라는 생각에도 믿음이 필요 없다. 삶은 고뇌와 갈등, 그칠 줄 모르는 욕망으로 점철된 끔찍한 고통이라는 생각을 인정하는 데도 믿음은 필요 없다. 이것들 모두가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로부터 벗어나 비현실 속으로 도피하고 싶을 때는 반드시 믿음이 필요하다.

 

- 컵은 비어있어야 쓸 수 있다. 따라서 특정한 믿음과 주장, 확고한 신념으로 가득 찬 마음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무언가를 끊임없이 반복하는 무미건조한 마음에 지나지 않는다. 오히려 믿음은 자신을 분명하게 아는데 방해가 된다. 그렇다고 믿음이 없는 사람은 자신을 잘 바라볼 수 있을까? 그렇다. 우리가 갖고 있는 많은 믿음들을 제거하면 자신을 바라보는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어진다. 우리가 자신과 동일시하는 믿음이 사라지면 우리 마음은 믿음과 자신을 같은 것으로 보지 않고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게 된다. 그 때 우리는 비로소 자신을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다.

 

- 우리는 끊임없이 무엇인가에 의존하려 한다. 그러나 자신의 안정과 내면의 평화는 다른 대상에 의존해서는 얻을 수 없다. 남에게 의존하는 것은 자신이 익히 아는 사실로부터 도피하기 위한 천박하고 비굴한 방법에 지나지 않는다.

 

- 외로움은 그것을 진정으로 느끼고, 이해하고, 그 본질까지도 꿰뚫어서 자기 안에 갈무리지 않는 한 결코 외롭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외로움을 극복하지 않는 한 우리는 그 어느 것으로부터도 자유로워질 수 없다. 진리나 진실 또한 아무런 의미가 없다.

 

- 우리는 흔히 자신이 듣고 싶은 것, 들어서 불쾌하거나 번잡스럽지 않은 것만 골라서 들으려 한다. 자신에게 도움이 되거나 꼭 필요한 것, 위안이 되고 한 순간일망정 고통을 잊게 해주는 것만 듣기를 원한다. 그러나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는 것은 제가 듣고 싶은 것만 듣기 위해서가 아니다. 평소에는 무심하게 스쳐 지났던 것, 지금은 필요 없지만 잘 갈무려 두면 언젠가는 반드시 필요한 것, 나는 싫지만 다른 사람이 좋아하는 것을 듣기 위해서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나의 생각과 의지를 버릴 때 비로소 다른 사람의 참 모습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