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3. 21. 08:14ㆍ시
산 수 유
너 댓살 어림의 나를
무릎에 앉히고 어르시던
아버지가
실버들보다 가늘고 약한 나뭇가지를
사랑채 대문 앞 한 켠에
깊숙이 꽂아 넣으시면서 말했다.
네가 어서 자라 내 나이쯤 되면
이 작은 나무가 아마 두 장丈도 넘는
고목古木이 되어 있을 거다.
봄이 오면 노란 꽃 멍울이
숭얼숭얼 이팝 처럼 가지마다 맺혀 가득하고
마침내 그 많은 꽃 이파리들이 함성처럼
일제히 피어나면
세상은 온통 샛노란 꽃무더기로 변하겠지만
그 때는 꼭 그 꽃들 사이로만
세상을 내다 보거라.
그러면 틀림없이
그제까지 네가 보아오고
실제 겪으며 살아낸 세상과는
전혀 다른 세계를 만나게 될게다.
진실로 그런 날이 올지 모르겠다만
나는 반드시 네가 그 색다른 세상을
마주하고 바로보기를 바란다.
쉰다섯 늦은 나이에 날 첫아이로 얻은
아버지는 그 즈음 환갑을 훌쩍 지난
노인장老人丈이셨을 터이다.
그 민망함과 안타까움 모두 잊고서
그 아버지의 삶보다 더 긴 세월을
허랑하게 살다가
세상에 다시없는 무슨 대단한 일이라도 이룬 양
어릴 적 태胎 자리로 당당하게 돌아와 하는 일 없이
뭉그적거린 것이 얼추 다섯 해가 넘는데
나는 왜 여직 샛노란 꽃 멍울을 이팝처럼
가지마다 수북하게 피워내는
저 고목진 산수유나무를
밤새 눈비 몰아친 험상한 이 봄날 아침에야
눈 안에 두고 살피는 것인가.
이제야 아버지의 그 시간과
심상찮은 말들을 새삼 일깨워 되새기는가.
세상을 살되 네가 지닌 자尺로 세상을 재지 말거라.
세상에는 저마다의 자尺를 지닌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무수히 많은 저만의 세상을 재단하고 있단다.
너마저 그들의 무망無妄한 노고에 힘을 더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거라.
아버지가 이승을 떠나실 제 남긴 그 말씀을
나는 여직 그 작은 단초마저 요해하지 못한 터다.
아버지는 이제 저승에서 다시 찾아뵈어도
알아 못 볼 다른 분이 아닐지 두렵기만 한데
그 날의 아버지보다 훨 나많은
노년이 되어서도
당신이 말하고 그리던 새로운 세상이
실제 눈앞에 드러나는지 멀어지는지
가늠은커녕 분간조차 할 수 없는
청맹과니가 되어 살아온 자식의 한평생은
여직 미망迷妄에 쌓여
제 세상을 떠나지도 버리지도 못한 채로
그래도 무슨 아쉬움이 남았다는 것인지
이렇게 허랑하게 떠돌기만 합니다.
저렇게 샛노란 산수유 꽃 멍울을 그저 바라볼 뿐입니다.
2018. 3. 21 이른 새벽
얼마만에 풀어보는 詩心인가? 그것도 봄눈이 잔뜩 쌓인 험상스런 봄날 새벽의 스산한 悔悟일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