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3. 7. 07:31ㆍ단상
- 우리의 마음은 언제나 과거에 사로잡혀 있다. 우리가 인지하는 모든 의식이 과거이기 때문이다. 의식의 표면뿐 아니라 내밀하고 깊은 곳까지 가해지는 상처나 기억까지도 모두 과거다. 어느 무엇에도 사로잡히지 않는다면 우리의 마음은 과거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그러나 좋은 생각이든 나쁜 생각이든, 어떤 생각에 사로잡히는 순간 우리는 과거와 관계를 맺게 된다. 그러므로 과거로부터 자유로워지려면 과거를 주시하되 그것에 사로잡혀서는 안 된다. 어떤 이유로든 과거를 선택하지 않아야 한다. 기억의 강물이 움직일 때 지나간 것들에 사로잡히면 눈앞에 전개된 현실의 실제적이고 참되며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없다.
- 우리는 생각을 통제하면서 자신을 절제하기 시작한다. 자신이 품은 좋지 않은 생각들을 애써 통제하면서 누구나 인정하고 칭송하는 이런저런 존재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 이처럼 내가 있고, 내가 통제하는 구체적인 대상으로서의 존재가 있을 때는 인위적인 노력의 과정이 발생한다. 이것이 바로 일상적인 존재의 실상이다. 자신을 절제하는 사람은 어떤 경우, 어떤 상황 하에서도 자신의 존재와 의미를 한정할 수 있다.
- 자유로운 마음속에는 반드시 겸허함이 있다. 겸허한 마음으로 인해 비로소 우리는 자유로워질 수 있다. 자유로운 마음은 겸허함을 배울 수 있지만 저항하는 마음은 겸허함을 배울 수 없다. 지식의 축적이 아닌 참된 배움은 특별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배움은 상대적으로 수월하다. 이미 알고 있는 것에서 알게 된 다른 것으로 옮아가는 것일 뿐인 까닭이다. 그러나 진정한 배움은 그와 달리 이미 알고 있는 것으로부터 아무도 모르는 미지의 것으로 옮겨가는 것이다. 우리는 오직 이런 과정을 통해서만 참된 배움을 만날 수 있다.
- 네가 처한 현실을 깊이 인식하고 자신의 욕망과 그것이 지닌 참된 의미를 이해하고 생각의 방향이 맞는지 살펴보면 닫혀있던 의식의 문이 열리면서 이제까지 불확실하던 것들, 너의 무의식 속에 내재되어 있던 것들까지도 모두 분명하게 드러날 것이다. 네 의식의 근저에 묻혀있던 것들이 투사되면서 지속적인 자각상태가 확립되고 황홀한 의식의 통합이 이루어진다. 이런 의식의 통합이야말로 너의 존재를 완전하게 만들어준다.
- 서로의 필요에 의해 맺은 관계는 반드시 갈등을 초래한다. 아무리 우호적인 관계라 해도 언젠가는 특정한 의도나 목적을 위해 상대를 이용하기 위해서 맺는 관계는 진정한 관계가 아니다. 서로를 이용하는 관계에서는 어떤 교감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서로가 서로를 이용하는 관계를 토대로 한 사회는 폭력적으로 변한다. 목적과 이득은 사람 사이의 진정한 관계와 교감을 방해한다. 물질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필요한 것에 기초한 사회구조는 갈등과 혼란, 개인과 대중의 불행을 양산한다. 개인의 필요와 효용이 우선하는 사회에서는 타인과의 접촉이나 교감이 불가능하다. 자신의 이해와 안위를 위해서 사람을 물건처럼 이용하는 한 절대 타인과 교감할 수 없다. 일상의 삶 속에서 타인과 맺는 관계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것이 필요한 까닭이 거기에 있다.
- 무언가를 이용하는 것은 곧 이용당하는 것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이용하려고 한다. 그러나 이용하는 것은 이용당하는 것과 같다. 무엇을 이용해서 자신의 필요와 욕구를 충족시키려는 시도는 불필요한 의존을 낳고 이 같은 의존은 집착과 소유를 만들어 우리의 소유물이 오히려 우리를 소유해버리는 불행한 사태가 일어난다. 무엇인가에 의존하지 않거나 특정한 물건이나 사람, 관념을 소유하지 않으면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의구심 때문이다. 무언가에 기대어서, 그것을 이용해서 이루는 것은 무엇이든 무엇이라도 우리 삶의 중요한 부분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 초연함은 아무 거리낌이 없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간직하고 소중하게 여겼던 것들을 잃어버렸을 때 보이는 초연함은 상실의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우리가 애써 만들어낸 허상일 뿐이다. 억지로 꾸민 초연함을 통해 또 다른 집착을 만나게 되므로 이 같은 노력은 결국 또 다른 집착의 과정이 된다. 초연함은 슬픔과 고통의 결과다. 상실과 집착으로 인한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우리는 흔히 잃어버려도 좋은 것, 집착해도 문제가 없을 다른 대상을 찾는다. 그러나 그렇다 해서, 대상을 바꾼다 해서 그런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아니다. 고통을 두려워하지 말고 직시할 때 비로소 그것들을 거리끼지 않게 될 것이다.
- 무엇에 예속되면 턱없이 성급해진다. 우리는 곧잘 자신의 애장품과 자기를 동일시한다. 이는 비존재에 대한 두려움이 소유욕과 환상을 불러일으키며 어떤 결론에 예속되도록 한다는 의미다. 성급한 결론은 대개 독선적이며 교활하고 무모하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를 파멸로 이끈다.
- 사실을 사실로 인지할 때 혁명은 성공한다. 혁명의 성공 여부와 관계없이 우리는 누구나 감당하기 힘든 외로움을 경험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외로움으로부터 도망치려고 한다. 혼자 있는 것을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외로움으로부터 도망치려는 노력이 모두 부질없는 짓이라는 사실을 안다면, 무슨 짓을 해도 그 치명적인 외로움으로부터 절대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다면, 우리는 드디어 어떤 외로움으로부터도 더 이상 도망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사태를 직시하는 관찰자가 될 수 있다. 관찰자와 관찰대상은 하나다. 생각과 느낌 속에서 그 둘이 하나가 될 때 우리의 의식은 혁명을 완수할 수 있다.
- 집착은 곧 도피다. 만일 자신이 이미 조건 지워져 있다면 그 상태를 깨닫고 수용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조건 지워져 있는 자신의 상태는 다른 대상과의 관계를 통해서만 파악 할 수 있다. 우리가 어떤 일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그 일과 자신을 동일시하기 때문이다. 무엇을 자신과 동일시하게 되면 우리는 이내 그것에 집착하게 되고 그 집착은 우리에게 집착의 대상으로부터 도피할 수단을 제공한다. 그러므로 집착은 곧 도피이며 이 같은 도피는 우리에게 지워진 조건을 더욱 강화시킬 뿐이다.
<네게 江 같은 기다림>
사람을 메마르게 하는 것 가운데
기다림만 한 것이 있을까?
머리칼 한 올씩
헤집으면서
오지 않는 것들
세상 어디서 무얼하는지
제 모습 한 번 보이지 않는
괘씸한 것들
하루 또 하루
기다리고 조바심 쳐도
달라질리 없음을
익히 알지만
그래도 행여
손꼽아 기다리고
피말리듯 안달함은
아직은 내가 너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사랑은 늘
기다림과 함께하는 까닭에
항시 네 안에서
너를 감싸고 어루만지며
편히 잠들게도 하지만
그래서 네 눈 안에 드는 세상을
눈부시게 펼쳐도 보이지만
본디 그 태생이나 빛깔은
어둡고 쓸쓸하며 서러운 것이다.
거두고 보살펴도
끝내 돌아서는 들짐승처럼
기다림이란 어쩌면
지금껏 살아온 날들과
앞으로 살아낼 세월 모두가
조금씩 굳어서
바위가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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